조선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풍속 화가
김홍도
중인으로 전락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홍도는
어려서부터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우며 자라왔고,
스승인 강세황의 추천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된 그는 궁중화원으로 명성을 올리며
강세황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1773년, 29세의 젊은 나이인 김홍도는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였던 정조의 초상을 그리게 되는데
이는 화원으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 무렵부터 그는 명나라 문인 화가인 이유방의
호를 따와서 단원(檀園)이라 스스로 칭하였는데,
이유방의 고상하고 맑은 정신을 지닌 그림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후 단원 화풍이라고 불리는 산수화들을
그려낸 그는, 과감한 생략을 통해 스스럼없는
필묵을 구사하여 산수화의 진면목을 보여주었고,
말년에 이르러 조선 후기 농민과 수공업자와 같은
서민의 생활상을 소재로 큰 관심을 기울이며
풍속화를 그려낸 그는,
1800년, 정조의 승하와 그의 후원자인
김한태를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1805년 겨울에 쓴 편지를 마지막으로
정확한 사망 시기가 알려지지 않은 채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정조의 신임과 뛰어난 화법으로
높은 명성을 지닌
조선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풍속 화가,
단원 김홍도.
" 김홍도는 그림에 솜씨 있는 자로서
그 이름을 안 지가 오래다.
삼십 년쯤 전에 나의 초상을 그렸는데,
이로부터 무릇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를 시켜 주관케 하였다. "
- 정조의 어제문집 中 -
檀園 金弘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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