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성을 표현한
오스트리아 출신 천재화가
에곤 실레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툴른에서 태어나
천부적인 자질로 빈 미술학교에 입학하지만
보수적인 학풍으로 3년 만에 중퇴하게 된 에곤 실레.
바로 이 시기에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나게 되면서,
에곤 실레의 나이 17세, 클림트의 나이 45세에
둘은 멘티 멘토의 관계를 넘어서 친구를 맺었다고 합니다.
초기의 그는 클림트를 연상시키는
아르누보 계열의 장식적인 양식을 선보였지만,
점차 클림트의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갔고
클림트와는 대조적으로
장식적인 측면보다 표현에 더 관심을 두었던 에곤 실레는
죽음과 에로티시즘이 결합된 충격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작품들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 결과, 육체를 왜곡된 형태로 거칠게 묘사하고
메마르고 병적인 색을 띠면서, 종종 강한 성적 의미를 지니는
독자적인 스타일이 나타나게 되었는데요.
그중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죽음과 여인>
금전적인 문제로 중산층 가정의 여성과 결혼하게 되면서,
4년 동안 사랑했던 ‘발리’와의 이별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남녀 관계 속 파멸 직전의 괴로움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1918년, 클림트의 사망 이후
빈 분리파 전시회에서 인생 최고의 큰 성공하게 거둠으로써
예술·경제적으로 그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지만
같은 해 10월, 스페인을 덮친 독감으로
2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관능적 욕망과 같은 불안정한 내면을
격렬한 감정 표출 형태로 표현한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를 이끈 천재 화가, 에곤 실레
"예술을 억압하는 것은 범죄다. 태어나는 생명을 죽이는 것과 같다."
-에곤 실레-
Egon Schi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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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
작성일 2021-08-31 1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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